[책마을] 12세기 1도 상승한 기온, 유럽의 번영 불렀다

입력 2023-01-27 18:07   수정 2023-01-28 00:02


12세기 유럽은 200년 전에 비해 평균 기온이 1도가량 높았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중세 온난기’다. 우리가 알아차리기 힘든 평균 기온 1도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평균 기온이 0.5도만 내려가도 서리 가능성이 커져 저지대에서는 두 번 연속 수확에 실패할 위험이 6배, 300m 이상 지대에서는 100배까지 올라간다. 0.5도 차이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모티머가 서구 11~20세기 1000년의 역사를 ‘변화’ 키워드로 풀어낸 <변화의 세기(Centuries of Change)> 중 한 대목이다. 모티머는 4권짜리 영국 역사 시리즈물 <시간 여행자의 가이드>로 명성을 얻었다. ‘타임스’가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중세 역사학자’로 평가할 만큼 중세 기록물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유려한 필력으로 역사소설도 여러 권 쓴 작가의 대중 역사서여서 600쪽 분량인데도 쉽게 읽힌다.

모티머는 서구사의 변화를 ‘연결성’ 관점에서 바라보자고 한다. 중세 온난기의 곡물 수확량 증가는 아동 사망률 감소와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풍부한 노동력으로 대규모 개간과 이를 통한 잉여 농산물은 문화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그 중심엔 유럽 전역의 수도회 연결망이 있었다. 수도원 건립은 설계와 건축, 구조공학, 의학을 발달시켰고 무엇보다 도서관과 학교의 확충으로 중세 유럽인들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기후와 인구 증가의 나비효과가 이처럼 위대한 결과를 낳았다.

역사에 대한 입체적 관점은 재난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14세기 흑사병 이후 소작농의 노동력 가치가 올라가면서 결국 농노제가 무너졌다. 20세기 1, 2차 세계대전은 여권 신장의 기폭제가 됐다. 여성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 군수공장에서 일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두 전쟁에서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여성들은 미국과 캐나다, 유럽 각국과 일본 등에서 선거권을 얻었다. “흑사병 이후에 노동력 부족으로 모든 노동자의 가치가 상승했듯, 전면전은 사회에 모든 성인이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을 강제로 주지시켰다.”(438쪽)

책의 구성은 그리 참신하지 않다. 흡사 중·고교 역사 교과서처럼 11세기에서 20세기까지 연대기 순으로 짜여 있다. 저자는 세기마다 변화의 주역 한 사람씩을 선정했다. 콜럼버스(15세기), 마르틴 루터(16세기), 갈릴레오(17세기)처럼 선뜻 수긍할 수 있는 인물도 있고 그레오리 7세(11세기), 피에르 아벨라르(12세기), 에드워드 3세(14세기) 같은 의외의 인물들도 있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히틀러를 꼽은 데는 동의하지 못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기준일 뿐, 최종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역사의 깨알 지식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어느덧 통찰력의 키가 커졌음을 느낄 수 있다. 로크의 <통치론>,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인간불평등기원론>,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헤겔의 철학서 등 고전에 대한 자극제 역할도 한다.

“이 책은 서구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서구는 엎질러진 잉크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422쪽) 서구 역사가 전 세계에 미친 영향은 비단 20세기만은 아니다. 특히 식량과 에너지·운송 기술을 선도하면서 서구는 수백 년간 세계를 이끌어 왔다. 빌 게이츠가 가장 좋아한다는 캐나다 학자 바츨라프 스밀의 <대전환>과 함께 읽어도 좋겠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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